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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총선이 끝나고, 인터넷에선 그 후유증이 제법 오래 가는 것 같다. 온라인의 ‘넷심’과 오프라인의 ‘민심’은 사뭇 다르다고 하는데, 그래도 온/오프라인 상에서 일치된 어떤 아쉬움을 보자면, 노원구에 출마한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의 낙선이다. 노회찬 후보를 누른 홍정욱 당선자는 내가 어렸을 적 주위에서 꼭 읽어보라고 하던 책 ‘7막 7장’의 주인공이자, 한 언론사의 대표, 무엇보다 영화배우 남궁원씨의 아들로도 유명하다. 인터넷엔 뽑혀선 안 될 사람을 뽑아준 몇몇 지역구 주민들을 향해 쓴 소리를 내뱉는 광경이 자주 보인다. 사실 이 상황에서 “투표라는 것은 자기 선택 아닙니까?”라는 가장 일반적인 ‘화해 무드용’ 의견이 있지만, 나는 그 의견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좀 논란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정치적 무관심’이 팽배한 지금, 잘못된 선택을 향한 비판 그리고 그로 인한 갈등은 지금 현재로선 피곤하겠으나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단 그것이 지나치게 감정적인 마녀 사냥으로 가선 안 될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영화에 대한 논쟁을 벌일 때, “영화를 좋아하는 것 다 자기 취향 아닙니까?” 라고 상황을 무마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한다. 우리에겐 새로운 통합을 위한 건전한 갈등이 필요하다.) 지난 4월 13일 KBS에서 방영된 다큐 <노회찬과 상계동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이른바 ‘잘 생긴 정치’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홍정욱 당선자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기본적으로 그가 잘 생겼다는 것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다만 그것이 어떠한 상황, 특히 한 지역을 책임질 대표자를 뽑아야 한다는 상황에서 하나의 ‘조건’으로 나타날 때, 사람들의 의견은 갈린다. 현대 사회에서 잘 생겼다는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용서받을 수 있는 하나의 ‘미덕’이 되었다. 인간은 항상 아름다운 것을 바라볼 권리가 있으며, 자신 또한 아름다워질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좀 당연한 이야기를 하자면, 과연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우리는 좀 더 한 발자국 나아간 생각을 할 수 없냐는 것이다. ![]()
우린 다시 잘 생긴 것과 못 생긴 것에 대한 ‘이차적 고민’을 해봐야 한다. “인물이 좋으니까”라는 그 직접적인 자극이 주는 유혹을 떨쳐낼 수 있는 진중한 선택의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내면의 신중함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다음 총선 때, 지역을 위한 대변자가 아닌, ‘연예인’을 뽑을지 모른다. 이미 소문에 민감한 누리꾼들 사이에선 이런 것을 노리고 향후 정치판을 노리는 연예인들이 몇몇 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우리에게 과연 ‘잘 생긴 정치’란 무엇일까. 생각의 권리가 무엇보다 표출되어야 할 시기다. 덧붙임) 그렇다고 내가 홍정욱 당선자의 당선이 그의 ‘인물값’이라고 평가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가 내세운 공약들을 보자면, 더욱 씁쓸하다. 이 공약에서 느껴지는 어떤 기운이 비단 홍정욱 당선자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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